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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학년도 2학기 법과 정치과 수행평가 리포트
    이전 이야기/Duckso High School 2016. 3. 6. 01:38

    본인이 2015학년도에 제출했던 법과 정치라는 과목의 수행평가의 리포트를 올릴까 한다. 당시 주제가, <영화를 통해 찾을 수 있는 정의> 라는 꽤 어렵고도 쉬운 주제였는데, 꽤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 기록으로 남길까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과연, 정의란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정의는 이미 죽지 않았을까? 정의는 존재한 것일까? 정의라고 하면 수많은 의문들이 든다. 사전적 의미로는, 1. 가치관에 맞는 바른 행동을 행하는 것. 2. 공평(평등)하게 분배하는 것. 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우고 있는 2009년 교육과정의 중학 도덕과, 고등 윤리와 사회과 등의 교과서에는 후자의 뜻이 채택되어 있다.

      세상은 정의를 정치에 요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의가 살아있는 정치를 부르짖고 있다. 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정의가 살아있는 정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역시 같은 해 유명을 달리한 姑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살아있는 양심, 행동하는 양심이 정의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실현하자고 했다. 왜 그런 것일까? 문자 그대로, 정치에서 정의가 가장 필요한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는 사회, 공동체와 가장 연관이 많은 것인데 그렇다면 사회가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모순이다. 정의라는 것은 각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 세상에는 60억개의 인생과, 60억개의 가치관과, 60억개의 정의가 있다는 뜻인데, 우리나라만 해도 5000만여개의 정의를 모두 실현시킬 정치가 나올 수 있을까? 또 하나, 자본주의를 수호하고 지향하는 오늘날 정치에서 공평하게 분배라니? 약자가 있어 강자가 있고, 빈이 있어 부가 있는 법이다. 모순이다. 이러한 정치는 있을 수 없을뿐더러, 이러한 정치를 실현시킬 정의는 더더욱 없다. , 정의는 살아있다, 죽었다.’가 아닌, ‘없다.’가 옳은 표현이다.

      서론이 길었다. 본인이 본 영화는 2012년 개봉한 영화, 타워(대한민국, 감독 : 김지훈). ‘타워라는 영화에서 정의를 찾을 수 있느냐고 묻겠지만, 난 영화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조 회장(차인표 역)의 만행에 대하여 집중했다. 거주민 중 재난 시 우선구조 명단을 만들어 소방대원들에게 강요하는가 하면, 대책 없이 남은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은 조치 등을 취하고 자신은 탈출하는 등, 마치 2014[4.16 세월호 침몰 사건]의 선장님을 보는 듯 하다.

      가진 자들만이 뭐든지 가지는 이 세상의 모순에 대해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곧 가라앉았다. 엔딩 장면이 너무나도 슬펐기 때문이었다. 이내 눈물 흘리며, 끝난 후 영화에 대한 눈물의 여부를 물을 뿐, 아무도 그러한 장면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웃어 넘길 부분이지만, 그런 장면들이 사회의 이러한 이면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세상에서 정의는 만들어 낼 수없는 것일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이 답도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정의를 만들까? 어떻게 하면 정의를 구현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정의는, ‘찌질함에서 나온다. 이다. 흔히, 별것도 아닌 일에 가지고 불평 불만에, 여러 토를 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들 찌질하다고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하는 꼬라지가 더럽고 추잡하다. 는 뜻이다. , 별로 좋지 않은 뜻이다. 찌질이란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본인이 찌질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계속 이야기 하라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일 같지만, 사실 그 일은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눈이 많이 내린 20151225일 크리스마스의 어느 날,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커다란 나뭇가지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다고 해보자. 그 길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교로 등교하는 도중 만나는 길처럼, 좁고 옆에 펜스가 설치되어 차도로도 갈 수 없다. 게다가, 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쌩쌩 달리는 중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느 선택을 하겠는가? 당연히 길 한쪽으로 그냥 비켜가거나 일시적으로 들었다가 지나가면 그대로 놓겠지. 등교길에 바쁜 나도 그럴거고, 여러분들도 그럴거고, 영중쌤도, 심지어 12월의 어느 날 사귀기 시작하여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커플들도 그럴 것이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가? 이 일에 문제를 제기하고 조치를 취하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직접 조치하면 좋겠지만, 나 같이 근육도 없고 뭣도 없는 사람들은, 관련 기관에 전화라도 해 이야기하여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해소하고, 편안함을 공평하게제공하였으니 정의를 만들어 보인 것 아닌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라. 내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토론하고 생각하고 말하라. 물론, 그러한 행동으로 무언가가 바뀌진 않는다. ‘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행동해야 한다.’라는 가르침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행동할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얼마든지 이야기해야 된다. 24시간도 모자라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최대한의 많은 사람들의 고견과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고 생각을 들어야 한다. 진정한 다수결은, 거수표결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합쳐지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진정한 다수결이다. 다수결은 절대 쉬운게 아니다. 어떠한 논제와 의견에 대하여 종이에 띡, 찍거나 손을 번쩍 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다수결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다수결의 진정한 원칙을 손상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방안은 무엇인지, 묻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결여되어 있다. 아무리 사람이 5000만명이나 되어 의견을 표결할 수 없다.’ 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환상적이고 신비한 제 3의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미 최소 대한민국 국민만 하더라도 83%가 그 신비한 공간에 어느 때라도 접속할 수 있는 기기(스마트폰/20154월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물어보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당당히 찌질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실제로도 찌질해져야 한다. 모든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결론과 의견을 도출하며 그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까 위에서 정의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행동한다. 그 것이 살아있는 정치며, 살아있는 양심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말, 굉장히 사소한, 일상적인 사항이다. 우리나라는 말에 대하여 꽤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한때 말 잘못하여 비밀경찰이나, 구 안기부(현 국정원)에 끌려간 사람들도 여럿 있고, 불이익을 두려워한 나머지, 선거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맞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굉장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문제지만, 이것에 대하여 꽤나 큰 아픔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 우파를 따지는 것은 이제 속물에 속한다. 골수 우파와, 극단적 좌파가 아닌 이상 사회, 정치적 변화와 온건적 개혁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대체, ? 그 것을 말하지 않는가? 왜 그것을 TV 안방에서 뉴스를 보며 혼자 중얼거리며 탄식이나 하고 있냐는 말이다.

      찌질해지고, 조금 더 자세히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자. 말하자, 너의 의견을, 너의 생각을. 같이 공유하고 서로 생각하며 그 것에 대한 조치를 취하게 하던, 조치를 취하라. 아니면, 말할 자신이 없는가? 손으로 쳐라. 이미 당신의 가상 키보드 타자 실력은 세계 수준급이다. 당신의 그 수준급 실력으로 SNS에서 만 난사하는 것이 아닌, 조금 더 의미있는 행동 예컨데 세상을 바꾸게 할 수 있는 행동 에 쓰고 싶지 않은가? 썩게 한 것도 잘못이지만, 그 썩게 한 것을 방관하고, 다시 갈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찌질함과 정의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찌질해져야 한다. 설사 그 것이 성평등과 관련되어 남성이 여성들의 비난을 사고, 여성이 남성들의 힐난을 받아도 문제를 제기하여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고 고쳐나가며 방안을 마련하고 조금씩 고쳐나간다면 정의를 만들어 가는데 이바지 할 것이라고 본인은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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